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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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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Whoever fights monsters should see to it that in the process he does not become a monster. And if you gaze long enough into an abyss, the abyss will gaze back into you. -Beyond Good and Evil, Aphorism 146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 또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강력범을 잡는 형사가 강력범을 닮아간다고 한다. 거친 이들을 상대하다보니 거칠어진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그저 조직을 위해 일하느냐 나라를 위해 일하느냐 하는 "미묘한"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 "미묘한" 차이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것마저 잃어버린다면 형사라는 위치 또한 잃어버릴 것이므로.


우리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돈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그런 사회. 승자독식,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지나친 경쟁. 의미 없는 줄세우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며 토익을 공부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어학연수를 간다. 세상을 느낄 틈이나 타인을 바라볼 여유따윈 없다. 이력서에 한줄이 더 생겼다면, 또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다음 퀘스트를 수행할 뿐이다. 그런 퀘스트들을 거치며 차근차근 경험치를 쌓고 있다. 그러나 설령 레벨업을 해도 승자가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승자를 위한 부품은 될 수 있겠지만. 그러면서 우리 모습은 차근차근 괴물을 닮아갈 것이다. 한 명의 승자 뒤에는 패자의 수없이 많은 피와 눈물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으니. 


우리는 요 며칠간의 비극과 혼란 속에서 그런 '괴물'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불행을 맛봐야 했다.


선장은 배를 버렸다.

전파는 누군가의 가슴을 두번 찢어놓을 글귀를 실어 날랐다.


인간은 넘치는 정보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몇 가지 경향을 띈다. 전문성에 의지하고, 순간의 느낌에 의존한다. 더구나 우리는 경쟁에 지쳐있어 그런 경향은 더더욱 심화되어 있다.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 들었는데...'라며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SNS를 통해 실어 나른다. 불행히도 그런 '널리 퍼트려 달라는' 정보는 어떤 이가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저 장난으로. 정보는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파하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괴물의 도구가 되었다.


기러기들을 보면 마음의 위안이라도 되지만,

기레기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도 않는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까?


그러나 더 서글픈 일은 분명 이런 일은 되풀이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테니.





세월호의 참사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부디 실종자들 중에서 한명이라도 많은 생존자가 돌아와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